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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가을의 전설

    37
    사용자 정보 없음(@rosie)
    2018-07-16 08:20:21





 
 
싸리꽃 피는 가을이 오면
대추나무에 묶어둔 흑염소의 숨 높이만큼
낮게 구름이 와 깔리곤 하는 산정(山頂)의 마을은 부산해진다
벌써부터 희고 고운 눈이 오는 소릴 듣기 위해
마당가에 우두커니 서 있던 꽃과 나무들은
폭죽처럼 요란하게 터지던 향기와 열매들을 내려놓으며
빠르고 침착하게 앙상한 나뭇가지나 뿌리로 되돌아가고
그해 가장 낮은 목소리로 흐르는 시냇물 따라
한 마리의 송아지 울음도 소음인 듯
서둘러 고삐를 쥐고 돌아오는 어른과 아이들은
꽉 막힌 제 귓구멍을 후벼 파듯
집안의 아궁이며 굴뚝들을 뚫어놓곤 잠에 든다
잠 속에서도 희고 고운 눈 오는 소릴 듣고
이듬해 봄, 희고 고운 눈 오는 소리로
다시 피어나기 위해 기지개를 켜며 다시 눈 뜨기 위해
한 무더기 노을들, 잠깐 마실 왔다 아예 눌러앉아버린 것 같은
산정의 마을에 싸리꽃 피는 가을이 오면
 
 
 
- 함영춘 「 가을의 전설 」 -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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