자유게시판

• 단풍의 진단서

  37	사용자 정보 없음(@rosie) 2019-11-06 05:58:38

 
 
단풍의 진단서
 
 
 
가을을 기다려온 리트머스.
 
진단이 나왔어요
현이 없는 첼로는 뒤집어서 식탁으로 쓰세요
건반이 없는 피아노는 화장대로 사용하시고요
바람의 분절음마다 국화꽃을 꽂아요
 
유품이 폐품이 아니면 좋겠어요
단 몇 그램의 시간만 저울에 달았다가 포장해 가시는 손
전화기 배터리가 방전되듯 모두 그렇게 시한인 것 알지만
당신의 혈관 속에는 아직도 맑은 음색을 지닌 햇볕이 제법 붙어 있습니다
 
그리움은 미생물
이별하는 영혼은 깊은 발효를 계속하는 산성
구토 때는 오렌지 빛 노을을 섞은 녹차로 잔잔히 속을 헹궈보세요
저 1그램의 햇살 너머에는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 있다지요
그렇게 간절히 자기만의 색을 찾더니만
드디어 해냈군요, 죽음 직전
 
정체를 아는 데도
정체를 만드는 데도
평생이 걸리죠
 
 
 
 
- 김은정 시집 『 너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』중에서 -
 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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