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약간의 거리
37사용자 정보 없음(@rosie)2019-10-21 06:21:19
약간의 거리
꽃과 꽃 사이가 쓸쓸하다고 당신이 말했을 때 나는 약간 고개를 으쓱했다
첫사랑과 첫눈, 그 '첫' 때문에 쓸쓸했던 나는 당신과 거리를 두었다
붉은 꽃, 흰 꽃이 어느 쪽으로든 꺾일 수 있게 만발했다고 함부로 꺾을 수 없듯이,
화살표가 가리키는 세상의 모든 방향을 이해할 수 없어 당신과 거리를 두었다
그 거리는 오래되었으니 낯설고 이상한 것이 없어진 당신과 거리를 두었다
더 이상 거리낌이 없게 되었을 때 빛나는 것은 항상 길 건너편에 있었다
햇빛 속에 휘날리다 사라지는 눈발 같은, 몸 둘 바 없다는 말...
약간 삐끗했을 뿐인데 생에서 멀어지는 순간에도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
그래서 나는 당신과 거리를 두었다
꽃의 직진은 그 어떤 직후보다 쓸쓸할 거라는 걸 미리 안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
나는 그 거리를 사랑했으므로 당신은 거기 혼자 서 있어야 한다
- 박소유 시집『 너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』중에서 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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