방송국 스튜디오
자유게시판
-
오래된 주전자
37
사용자 정보 없음(@rosie)2018-12-03 05:52:21

오래된 주전자
새로 산 유리 주전자 새 까맣게 타 버렸다
버리려다 잊어버린 낡은 주전자 기억하고
불 위에 올렸다, 찌그러진 몸통, 구부러진 입
흔적만 남은 꽃무늬 몸통 속에서 물이 끓는다
잊어버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가
잊어버리는 것보다 기억 하는 일이 더 힘든 일
첫 편지, 첫 키스, 첫 사랑, 첫 눈물, 첫 이별처럼
내가 기억하는 것은 상처로 남았는데
우연히 책갈피 속에서 찾은 꽃잎 한 장,
잊어버린 옛 친구의 사진,
서랍 속에서 툭 떨어지는 보내지 못한 편지
잊어버린 것들은 잊어버린 시간과 함께 온다
오래된 주전자가 쉬쉬쉬 소리 내며 끓는다
내가 떠나보낸 시간도, 나를 버린 시간도
모두 잊어버린 오래된 주전자다
눈 나리는 밤 돌아서 올 때 펑펑 울던 그 사람처럼
오래된 주전자 펄펄 끓고 있다.
- 정다혜 시집 『 스피노자의 안경 』중에서 -
댓글 0
(0 / 1000자)
- 쪽지보내기
- 로그방문

브라우저 크기를 조정해 주시거나
PC 환경에서 사용해 주세요.

개
젤리 담아 보내기 개
로즈 담아 보내기 개







업타운 (LV.5)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0
0








신고
